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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텍스트와 이미지를 생성하던 AI가 이제는 로봇이라는 신체를 입고 물리적 세계로 나오는 ‘피지컬 AI(Physical AI)’ 시대로 진입했다. 최근 대통령실을 비롯한 정부 관계부처가 “한국은 탄탄한 제조업 기반을 갖추고 있어 피지컬 AI 분야에서 미국이나 중국과 겨뤄볼 만하다”는 자신감을 내비친 것은 매우 고무적인 신호다.

하지만 냉정하게 짚어봐야 할 지점이 있다. ‘제조업(몸)’과 ‘AI(뇌)’만으로는 부족하다. 로봇이 현실 세계에서 안전하고 똑똑하게 움직이기 위해서는 수만 번의 시행착오를 겪으며 학습할 ‘가상 훈련장’이 필수적이다. 필자는 그 해법이 대한민국이 세계적 경쟁력을 보유한 ‘게임 산업’에 있다고 본다.

‘공장’이 아닌 ‘게임’에서 배우는 로봇

피지컬 AI의 핵심 경쟁력은 현실의 물리 법칙을 얼마나 잘 이해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러나 고가의 로봇을 실제 공장 바닥에 넘어뜨려 가며 학습시키는 것은 비용과 안전 문제로 불가능에 가깝다. 이 난제를 해결하는 기술이 바로 ‘디지털 트윈’과 ‘시뮬레이션’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시뮬레이션 기술의 근간이 우리가 즐기는 게임을 만드는 ‘게임 엔진’ 기술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것이다. 중력, 마찰, 충돌을 계산하는 물리 엔진, 3차원 공간을 구축하는 그래픽 기술은 이미 한국 게임사들이 세계 최고 수준으로 보유하고 있다. 정부가 강조하는 ‘제조업의 AI 전환’을 완성할 마지막 퍼즐 조각은 바로 이 ‘게임 테크(Game Tech)’다.

‘소버린 AI’를 넘어 기술 자립으로

정부는 최근 우리만의 독자적인 AI 생태계를 구축하는 ‘소버린 AI(Sovereign AI)’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기술 종속이 가져올 안보와 경제적 위협을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의지다.

이 논리는 피지컬 AI의 훈련 환경에도 똑같이 적용되어야 한다. 현재 글로벌 로봇 시뮬레이션 시장은 유니티(Unity), 언리얼(Unreal) 등 소수의 해외 게임 엔진이 장악하고 있다. 우리가 아무리 훌륭한 로봇 하드웨어를 만들어도, 그 로봇을 학습시킬 가상환경 플랫폼을 해외 기술에 의존한다면 진정한 기술 독립이라 할 수 없다. 국산 게임 엔진 기술과 서버 운영 노하우를 산업용 시뮬레이터로 전환할 수 있도록 R&D 지원을 확대해야 하는 이유다.

칸막이를 걷어내고 ‘원팀(One Team)’으로

피지컬 AI 선도국이 되기 위해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부처 간 칸막이를 걷어내는 것이다. 현재 게임은 문화산업(문체부)으로, 로봇과 AI는 첨단산업(산자부, 과기부)으로 분류되어 정책적 교류가 드물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게임 개발자가 로봇 엔지니어와 머리를 맞대고, 게임 속 AI가 실제 로봇 탑재로 이어지는 융합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 정부가 추진 중인 GPU 인프라 지원 사업이나 실증 단지 구축 사업에 게임 테크 기업들의 참여를 적극 유도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세계적인 제조 강국이자 게임 강국이다. 이 두 가지 강점을 ‘피지컬 AI’라는 용광로에 함께 녹여낼 수 있다면, 우리는 ‘추격자’가 아닌 ‘선도자’로서 글로벌 AI 전쟁의 승기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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