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2030년까지 AI·딥테크 스타트업 1만개, 유니콘·데카콘 50개, 연 40조원 규모 벤처투자 시장 진입을 목표로 내세우면서 2026년 예산과 제도 개편의 방향이 본격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2026년은 단순한 창업 지원이 아니라 ‘글로벌 스케일업’과 ‘모험자본 구조 개편’을 축으로 한국 스타트업 정책 패러다임이 전환되는 분기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이번 정책 구도에서 주목해야 할 지점은, 정부가 벤처·스타트업을 더 이상 주변적인 고용·혁신 수단으로 보지 않고, 국가 성장전략의 중심축으로 재배치하고 있다는 점이다. AI·딥테크에 정책·예산·제도 지원을 집중시키고, 기술·지역·인재·자본을 다시 묶어내는 방식으로 성장 시스템을 새로 설계하려는 움직임이 2026년 방향 속에 분명히 읽힌다.
2026년 예산의 키워드는 ‘회복’이 아니라 ‘스케일업’이다. 중소벤처기업부 예산은 코로나 이후 손실보전·단기 유동성 지원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 중소기업·소상공인·스타트업의 성장과 스케일업 지원 비중을 크게 높이는 방향으로 재편됐다. 예산 구조는 ▲기술 기반 벤처 생태계 재도약 ▲중소기업 기술혁신·스케일업 ▲소상공인의 미래형 산업 진입 ▲기업 간 연결·융합 성장이라는 네 축으로 짜여 있으며, 특히 한동안 축소됐던 중소기업 R&D 예산이 다시 확대되면서 기술혁신 중심 성장정책 전환 의지가 드러난다.
AI·딥테크 1만개 육성 계획도 숫자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정부는 AI·바이오·콘텐츠·방산·에너지·첨단제조 등 6대 전략산업을 중심으로 2030년까지 AI·딥테크 스타트업 1만개를 육성하고, 이 가운데 유니콘·데카콘 50개, 연 40조원 규모 벤처투자 시장 진입이라는 정량 목표를 제시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GPU 등 연산 인프라를 전략적으로 배분하고, ‘차세대 유니콘 프로젝트’를 통해 기업당 최대 1천억원 수준까지 단계별 투자·보증을 제공하는 대형 프로그램도 가동된다.
다만 1만개라는 양적 목표가 곧바로 생태계 경쟁력 강화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정책 자금·인프라가 특정 분야·단계에 과도하게 쏠리거나, 지원을 목표로 한 ‘정책 의존형 기업’이 양산되는 상황을 경계해야 한다. 기술 성숙도, 시장성, 글로벌 확장 가능성에 기반한 선별·집중 원칙과 실패 기업의 재도전을 자연스럽게 수용하는 구조가 함께 설계되지 않으면, 대규모 지원이 또 한 번의 ‘숫자 중심 붐’으로 그칠 위험도 존재한다.
창업–성장–글로벌 진출을 잇는 단계별 성장 사다리 구축 또한 2026년 정책 방향의 중요한 축이다. 예비창업자와 창업 7년 이내 기업을 대상으로 한 성장단계별 지원 프로그램이 정비·확대되면서, 초기 단계에서 1,800억원 규모의 사업화·교육·멘토링·보육 지원으로 약 1,700여 개사(명)를 뒷받침하는 계획이 제시됐다. AI·바이오 등 신산업 10대 분야 746개사를 선발해 최대 3년간 6억원의 사업화 자금과 후속 스케일업, R&D·정책자금·보증 연계를 제공하는 ‘초격차 스타트업 1000+ 프로젝트’도 본격적으로 확대된다.
문제는 이 같은 제도들이 ‘조각난 프로그램’으로 남지 않고, 창업자가 한 번의 경로 안에서 예비창업–초기–성장–글로벌 진출로 이어지는 경험을 실제로 누릴 수 있느냐다. 2026년에는 부처·사업 간 중복과 공백을 줄이고, 창업자가 성장 단계마다 다른 제도·기관을 전전하지 않도록 경로 설계와 집행을 조정하는 노력이 필수적이다. 지원 규모를 키우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창업 현장에서 이해하기 쉬운 구조와 일관된 심사·평가 체계다.
정부가 발표한 ‘벤처 4대 강국 도약 종합대책’은 기술, 지역, 인재, 자본 네 축을 중심으로 국가 성장전략의 중심을 벤처로 이동시키려는 첫 종합 플랜이라는 점에서 평가할 필요가 있다. 기술 측면에서는 전략산업 중심 지원과 GPU·데이터 인프라 배분, 차세대 유니콘 육성 등으로 글로벌 스케일업 경로를 구체화했고, 지역 측면에서는 수도권 편중을 완화하기 위해 지역 스타트업 허브, 재도전 지원, 지역 투자 기반 확대, 수조원 규모 지역 성장 펀드 조성이 추진된다. 인재 측면에서는 스톡옵션 제도 개선과 글로벌 기준에 맞는 계약 관행 정착, 기업가정신 확산이, 자본 측면에서는 모태펀드 2.0, 민간 자본 참여 확대, M&A·세컨더리 시장 활성화로 투자–회수–재투자의 선순환 구조 구축이 핵심 방향으로 제시됐다.
결국 2026년은 ‘또 한 번의 벤처 붐’을 만들 것인지, 아니면 기술·자본·인재·지역이 연결된 구조적 전환을 실제로 만들어내는 출발점이 될 것인지를 가르는 시험대가 될 것이다. 스타트업 입장에서는 정부가 제시한 AI·딥테크, 신산업 10대 분야, 글로벌 스케일업 프로그램 등 전략 축과 자사 기술·비즈니스 모델을 얼마나 정교하게 접합시키는지가 중요하다. 정책 담당자에게는 새로운 사업을 더 얹는 일보다, 이미 계획된 예산과 제도를 현장에서 체감 가능한 규제·계약·거버넌스 혁신으로 연결하는 일이 더 큰 과제다.
AI·딥테크 스타트업 1만개, 유니콘·데카콘 50개, 연 40조원 벤처투자 시장이라는 숫자는 이미 제시되었다. 이제 필요한 것은 그 숫자에 가려진 구조적 과제를 직시하고, 2026년을 ‘양적 확대의 연도’가 아닌 ‘질적 전환의 원년’으로 만드는 실행력이다.







